현대물리 (Modern Physics)
42장 원자 물리학 (Atomic Physics) — 원자 스펙트럼 · 보어 모형 · 수소의 양자 모형 · 파동함수 · 양자수 · 배타 원리와 주기율표 · X-선 · 레이저
42장 원자 물리학 (Atomic Physics)
아래는 42장의 절 구성입니다. 각 절의 본문은 순차적으로 채워 넣습니다.
들어가며 — 왜 수소 원자인가
41.3절(경계 조건에서의 입자)에서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 “원자 속 전자에게는 원자핵의 전기적(쿨롱) 인력이 그 붙잡아 두는 상호작용이고, 그 결과 ‘멀리서 $\psi\to0$’이라는 경계조건이 생겨 에너지 준위가 이산적이 된다. 이 이야기는 42장에서 이어진다.” 이 장이 바로 그 약속을 갚는 자리입니다.
달라지는 것은 퍼텐셜의 모양과 차원뿐입니다. 41.2절의 상자는 1차원이었고 딱딱한 벽이 양 끝에서 $\psi=0$을 강제했습니다. 원자는 3차원 구대칭이고 벽 대신 부드러운 쿨롱 퍼텐셜 $V(r)=-k_e e^2/r$가 전자를 붙잡습니다. 그래서 경계조건도 한 방향이 아니라 $r,\theta,\phi$ 세 방향에 걸리고 — 그 결과 1차원에서 하나였던 양자수 $n$이 $n,\ \ell,\ m_\ell$ 셋으로 늘어납니다. 이것이 41장에서 42장으로 건너오는 다리 전체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수소일까요? 원자는 100가지가 넘는데 한 장을 통째로 가장 단순한 원자 하나에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로 정리합니다.
| 이유 | 한 줄 요약 | 이어지는 절 |
|---|---|---|
| ① 정확해 | 실재하는 원자 중 슈뢰딩거 방정식이 정확히 풀리는 유일한 계 | 42.4 · 42.5 |
| ② 확장성 | He⁺ · Li²⁺ 같은 수소꼴 이온에 $Z$만 넣으면 그대로 적용 | 42.3 |
| ③ 검증 | 이론값과 실험값을 직접·명확하게 맞대볼 수 있음 (극한의 정밀도) | 42.1 · 42.6 |
| ④ 언어 | 여기서 나온 양자수와 $1s,2p$ 표기가 모든 원자의 공용어 | 42.6 · 42.7 |
| ⑤ 출발점 | 원자 궤도 → 분자 결합 → 고체의 에너지 띠로 가는 첫 계단 | 43장(분자와 고체) 이후 |
① 실재하는 원자 중 정확히 풀리는 유일한 계
먼저 표현을 정확히 해 둡니다. 41장에서 우리는 무한 우물과 단조화 진동자를 이미 정확히 풀었습니다. 그러니 “수소가 정확히 풀리는 유일한 문제”가 아니라 — 실재하는 원자 중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풀리는 대상은 ‘수소’라는 특정 원소라기보다 “전자 1개 + 점전하 핵”의 2체 쿨롱 계입니다 (그래서 ②처럼 He⁺·Li²⁺도 함께 풀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확해’는 비상대론적 슈뢰딩거 방정식 + 점전하 핵이라는 틀 안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전자가 둘이 되는 순간, 즉 헬륨부터 사정이 달라집니다. 해밀토니안에 전자–전자 반발 항
이 들어오는데, 이 항이 $\mathbf r_1$과 $\mathbf r_2$를 서로 얽어 놓아 변수분리가 불가능해집니다. 핵까지 세면 양자 3체 문제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닫힌 해가 없습니다.
헬륨의 비상대론적 에너지는 변분법(힐레라스 기저)으로 스무 자리 넘게 계산할 수 있고, 여기에 상대론·QED 보정을 더하면 실험값과 아홉 자리 안팎(상대 $\sim10^{-9}$)까지 맞아떨어집니다. 다만 그것은 손으로 적을 수 있는 공식이 아니라 계산 결과입니다. 수소가 특별한 것은 정밀도가 아니라, $E_n$과 $\psi_{n\ell m}$을 종이 위에 닫힌 식으로 적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화 — 그럼 ‘정확해’는 어디까지인가? 슈뢰딩거 → 디랙 → QED 미세구조는 디랙 방정식의 정확해 · 램 이동은 QED 섭동 계산
수소의 ‘정확히 풀림’은 세 층위로 나누어 보면 오해가 없습니다.
| 층위 | 무엇을 푸는가 | 해의 성격 | 새로 드러나는 것 |
|---|---|---|---|
| 슈뢰딩거 | 비상대론 + 점전하 쿨롱 | 정확해 | $E_n=-13.6\ \mathrm{eV}/n^{2}$ — 에너지가 오직 $n$에만 의존 |
| 디랙 | 상대론 + 점전하 쿨롱 | 정확해 | 미세구조 (42.6절) — 총 각운동량에도 의존해 갈라짐 |
| QED | 진공 요동까지 포함 | 섭동 계산 | 램 이동 — 디랙에서 겹쳐야 할 $2S_{1/2}$와 $2P_{1/2}$가 갈라짐 |
디랙이 주는 갈라짐이 준위 간격의 $\alpha^{2}\approx5\times10^{-5}$배 규모라서, 그 이름을 딴 상수가 미세구조상수 $\alpha\approx1/137$입니다. ‘정확해’는 디랙까지이고 그 아래부터는 섭동입니다 — 수소는 이 세 층위를 모두 실험과 맞대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계입니다.
② 수소꼴 이온으로 그대로 확장된다
핵전하가 $+Ze$이고 전자가 하나뿐인 수소꼴 이온(hydrogen-like ion) — He⁺($Z=2$), Li²⁺($Z=3$), Be³⁺($Z=4$) — 은 수소의 결과에 $Z$만 끼워 넣으면 끝납니다.
핵전하가 커지면 준위는 $Z^2$배 깊어지고 궤도는 $1/Z$배로 줄어들 뿐, 구조 자체는 완전히 같습니다 — 준위가 $-1/n^2$을 따라 촘촘해지는 모양도, 상태를 부르는 이름도 그대로입니다.
1896년 피커링(E. C. Pickering)이 별 ζ Puppis의 스펙트럼에서 찾아낸 피커링 계열은 오랫동안 ‘수소의 새 계열’로 여겨졌고, 1912년 파울러(A. Fowler)가 실험실에서 재현하기까지 했습니다. 보어는 1913년 이것이 수소가 아니라 He⁺의 선($Z=2$)이라고 주장했는데, 파울러는 두 리드베리 상수의 비가 정확히 4가 아니라 4.0016이라며 반박했습니다. 보어가 환산질량 보정을 넣어 이 4.0016까지 정확히 재현하자 파울러도 승복했고, 같은 해 에번스(E. J. Evans)가 수소선이 전혀 없는 순수 헬륨에서 같은 선을 얻어 확정지었습니다. 이 사건은 보어 모형이 결정적인 신뢰를 얻은 계기로 흔히 꼽힙니다.
(위 식들은 핵이 무한히 무겁다고 본 근사입니다. 핵도 함께 움직이는 효과를 넣는 환산질량 보정은 42.3절에서 다룹니다.)
③ 이론과 실험을 맞대기 가장 좋은 무대
수소가 좋은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검증이 직접적이고 명확해서입니다. 계산이 내놓는 것은 파장 하나하나이고, 실험은 그 파장을 그대로 재 옵니다 — 중간에 근사나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가시광선 영역의 발머 계열이 대표적입니다.
| 선 | 전이 | 파장 | 색 |
|---|---|---|---|
| $\mathrm{H}_\alpha$ | $n=3\to2$ | 656.3 nm | 붉은색 |
| $\mathrm{H}_\beta$ | $n=4\to2$ | 486.1 nm | 청록색 |
| $\mathrm{H}_\gamma$ | $n=5\to2$ | 434.1 nm | 청보라색 |
(공기 중 파장 기준. 교재에 따라 $\mathrm{H}_\gamma$를 434.0 nm로 적기도 합니다.)
이 선들을 지배하는 리드베리 상수는 오늘날 다음 값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핵을 무한히 무겁다고 본 극한값 $R_\infty$이며, 수소의 실제 파장에는 42.1절의 $R_H$를 씁니다).
괄호 안은 마지막 두 자리의 불확도이며, 상대불확도가 $\sim10^{-12}$ 수준입니다 — 가장 정밀하게 결정된 물리 상수 중 하나입니다. 수소의 1S–2S 전이 진동수는 이보다도 더 나아가 상대오차 $10^{-15}$ 수준까지 측정되었습니다.
이 정도 정밀도에서는 이론의 아주 작은 결함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실제로 수소 스펙트럼의 미세한 어긋남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미세구조 → 램 이동 → 양자전기역학(QED)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소는 ‘가장 단순한 원자’인 동시에, 현대 물리 이론이 반복해서 시험받아 온 표준 시험대입니다.
④ 모든 원자를 부르는 언어가 여기서 나온다
3차원 슈뢰딩거 방정식을 구대칭 쿨롱 퍼텐셜에서 풀면, 경계조건으로부터 세 양자수가 저절로 나옵니다.
| 양자수 | 이름 | 허용값 | 어디서 오는가 |
|---|---|---|---|
| $n$ | 주양자수 | $1,2,3,\dots$ | 지름 방향($r$) 경계조건 |
| $\ell$ | 궤도 양자수 | $0,1,\dots,n-1$ | 극각($\theta$) 방향 해의 정칙성 — 단 상한 $\ell\le n-1$은 지름 방정식에서 |
| $m_\ell$ | 궤도 자기 양자수 | $-\ell,\dots,+\ell$ | 방위각($\phi$) 주기성 |
| $m_s$ | 스핀 자기 양자수 | $\pm\tfrac12$ |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나오지 않음 |
마지막 줄을 특히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앞의 셋과 달리 스핀 $m_s$는 3차원 슈뢰딩거 방정식의 결과가 아닙니다. 스핀은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이 실험적으로 드러냈고, 이론적으로는 디랙의 상대론적 방정식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수소 원자의 상태를 완전히 지정하려면 네 양자수 $(n,\ell,m_\ell,m_s)$가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 만든 $1s,\ 2s,\ 2p,\ 3d$ 같은 표기는 원자가 아무리 커져도 그대로 쓰입니다 — 상태를 부르는 언어는 변하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에너지 서열입니다.
- 수소에서는 에너지가 오직 $n$에만 의존합니다. 그래서 $2s$와 $2p$는 축퇴(degenerate)되어 같은 에너지를 갖습니다.
- 다전자 원자에서는 안쪽 전자들이 핵전하를 부분적으로 가리는 가림 효과(screening) 때문에, 같은 $n$ 안에서도 $\ell$에 따라 에너지가 갈라집니다.
여기에 파울리 배타 원리(같은 네 양자수를 가진 전자는 둘일 수 없다)를 얹으면, 전자들이 아래 준위부터 차례로 채워지는 방식이 정해지고 — 그것이 곧 주기율표의 주기성입니다. 이 이야기는 42.7절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⑤ 분자와 고체로 가는 출발점
수소 하나로 분자나 고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소의 궤도는 그리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원자 궤도 두 개를 겹쳐 더하고 빼면(원자 궤도 선형결합, LCAO) 에너지가 낮은 결합 궤도와 높은 반결합 궤도로 갈라집니다. 원자가 셋, 넷으로 늘면 갈라진 준위도 그만큼 늘고 — 고체처럼 원자가 $10^{23}$개쯤 모이면 준위들이 촘촘히 뭉쳐 사실상 연속인 에너지 띠(energy band)가 됩니다. 띠와 띠 사이의 띠간격(band gap) 크기가 그 물질을 도체로, 부도체로, 혹은 반도체로 가릅니다.
41장 들어가며에서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대상으로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꼽았습니다. 그 설명의 첫 계단이 바로 이 장에서 구하는 수소의 파동함수입니다.
읽기 전에 — 시간 순서에 대한 주의
이 장은 42.3절 보어 모형 → 42.4절 양자 모형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혼동을 미리 정리해 둡니다. 41장에서 Planck에 대해 그랬듯, 여기서도 역사적 순서와 논리적 순서가 어긋납니다.
| 보어 모형 (1913) | 양자 모형 (1926~) | |
|---|---|---|
| 성격 | 구양자론 — 고전 궤도에 양자 조건을 ‘덧붙인’ 모형 |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유도되는 이론 |
| 전자의 상 | 정해진 반지름의 원 궤도를 도는 입자 | 공간에 퍼진 파동함수 $\psi$, 확률밀도 $|\psi|^2$ |
| $E_n$ | $E_n=-\dfrac{13.6\ \mathrm{eV}}{n^{2}}$ — 두 모형이 같은 값 | |
보어(1913)는 슈뢰딩거(1926)보다 13년 앞섭니다. 즉 42.3절의 보어 모형은 ‘양자역학의 근사’로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나온 모형입니다. 그런데도 에너지 준위 공식만은 정확히 맞혔기 때문에 — 그리고 그 이유를 나중에 양자역학이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 지금도 함께 배웁니다. 보어 모형은 에너지 준위는 맞혔지만 그림(원 궤도)은 틀린 모형이라고 기억해 두면 됩니다 — 실제로 각운동량 예측($L=n\hbar$)은 틀렸고, 양자 모형은 바닥 상태에서 $\ell=0$, 즉 $L=0$을 줍니다(42.6절).
이제 42.1절에서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 기체가 내놓는 선 스펙트럼부터 보겠습니다.
42.1 기체의 원자 스펙트럼
40.1절(흑체복사와 플랑크의 가설)에서 보았듯, 모든 물체는 연속적인 파장 분포로 특성화되는 복사를 방출합니다. 온도만 정해지면 스펙트럼은 끊김 없는 하나의 곡선입니다. 그런데 저압 기체에 전기 방전을 일으키면 전혀 다른 것이 나옵니다 — 연속 띠가 아니라 몇 개의 불연속적인 선뿐입니다. 이 선 스펙트럼(line spectrum)이 원자 물리학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방출 분광학(emission spectroscopy) — 기체가 스스로 내놓는 빛을 분광기로 분해해 선 스펙트럼을 관찰·분석하는 것. 어두운 배경 위에 밝은 선 몇 개가 나타납니다.
흡수 분광학(absorption spectroscopy) — 연속 광원의 백색광을 시료 기체에 통과시켜 밝은 배경 위의 어두운 선을 관찰하는 것. 어두운 선의 위치는 그 원소의 방출선과 정확히 같은 파장입니다 — 다만 흡수는 출발 준위가 실제로 채워져 있는 선만 일어나므로, 방출선 전체가 아니라 그 부분집합이 나타납니다. (가시광 발머 흡수선이 보이려면 원자가 이미 $n=2$에 있어야 합니다. 상온 수소는 라이먼선만 흡수하고, 별 대기처럼 뜨거운 수소에서 발머 흡수선이 나타납니다.)
저압 기체의 전기 방전이란 무엇인가
유리관에 기체를 낮은 압력으로 봉입하고 양 끝 전극에 수백 V–수 kV의 전압을 겁니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네 단계입니다.
| 단계 | 일어나는 일 |
|---|---|
| ① 가속 | 관 안의 전기장이 떠돌던 자유전자를 가속시킨다 |
| ② 충돌 | 가속된 전자가 기체 원자와 충돌해 에너지를 넘겨주고, 원자를 들뜬 상태로 올린다 |
| ③ 방출 | 들뜬 원자가 낮은 상태로 되돌아오면서 그 에너지 차이만큼의 광자를 내놓는다 |
| ④ 증식 | 충돌로 튀어나온 이차 전자가 다시 가속되어 ①로 — 방전이 스스로 유지된다 |
전자는 에너지를 배달하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실제로 광자를 내놓는 주체는 들뜬 원자이고, 그래서 스펙트럼에 찍히는 것은 전압도 전류도 아닌 그 원자의 에너지 준위 구조입니다. 같은 관에 전압을 두 배로 걸어도 선의 위치(파장)는 그대로이고, 달라지는 것은 밝기와 선들 사이의 상대 세기뿐입니다.
왜 하필 ‘저압’인가
| 압력 | 전자의 평균자유행로 | 결과 |
|---|---|---|
| 대기압 ($\sim760$ torr) | 매우 짧음 (분자 $\sim0.07\ \mu\mathrm{m}$, 전자는 그 대여섯 배) | 같은 전압에서는 충돌 사이에 전자가 들뜸 에너지만큼을 모으지 못해 방전이 잘 시작되지 않음(개시에 훨씬 높은 전압이 필요) + 원자끼리 너무 자주 부딪혀 압력 넓힘(pressure broadening)으로 선이 뭉개짐 |
| 저압 (약 1–10 torr) 대기압의 0.1–1.5% 수준 |
충분히 김 (전자 기준 $\sim0.03–0.3\ \mathrm{mm}$) | 최적 — 전자가 충돌 전까지 들뜸 에너지(수 eV–수십 eV)를 모을 수 있고, 압력 넓힘이 작아 날카로운 선이 나옴 |
| 너무 낮음 ($\ll0.1$ torr) | 매우 김 | 전자는 충분히 가속되지만 부딪힐 원자 자체가 적어 빛이 약함 |
(참고: 스펙트럼선은 폭이 0이 아니며, 원자끼리 자주 충돌하면 준위가 흔들려 선이 굵어집니다 — 이것이 압력(충돌) 넓힘입니다. 또 수소의 첫 들뜸에는 10.2 eV, 이온화에는 13.6 eV가 필요합니다. 네온은 첫 들뜸이 약 16.6 eV로 더 높습니다.)
네온사인, 형광등, 나트륨 가로등, 실험실의 수소 방전관은 모두 정확히 이 ‘저압 기체 방전’이며, 색이 다른 이유는 오직 봉입된 기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방출 스펙트럼과 흡수 스펙트럼 — 같은 파장, 반대 명암
| 방출 스펙트럼 | 흡수 스펙트럼 | |
|---|---|---|
| 배치 | 방전관 → 분광기 | 연속 광원 → 시료 기체 → 분광기 |
| 보이는 것 | 어두운 배경 위 밝은 선 | 밝은 배경(연속 띠) 위 어두운 선 |
| 원자에서 일어나는 일 | 들뜬 상태 → 낮은 상태, 광자 방출 | 낮은 상태 → 들뜬 상태, 광자 흡수 |
| 선의 파장 | 같은 원소면 완전히 동일 — 흡수선은 방출선 중 일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온다 | |
| 실용 | 선의 파장 집합이 원소마다 고유 → 시료를 건드리지 않고 원소를 식별 | |
선 스펙트럼은 원소의 지문입니다 — 원소마다 다르고, 어디서 재든 같습니다. 동시에 바코드이기도 합니다 — 선의 배열 패턴을 대조표와 맞춰 읽으면 그 빛이 어느 원소에서 왔는지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비유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지문·바코드는 임의로 붙인 표식이지만, 스펙트럼선은 그 원자의 에너지 준위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왜 그 자리에 선이 오는지는 42.3절에서 설명됩니다.
태양의 광구는 거의 흑체여서 연속 스펙트럼을 내지만, 그 빛이 태양 대기(광구 상층·채층)를 빠져나오고 일부는 지구 대기까지 통과하는 동안 중간의 원자들이 자기 파장을 골라 흡수합니다. 그 결과 태양 스펙트럼에는 수많은 어두운 선 — 프라운호퍼선(Fraunhofer lines) — 이 새겨집니다.
1868년 8월 18일 인도에서 관측한 개기일식에서, 프랑스의 장센(P. Janssen)이 태양 채층 스펙트럼에서 정체불명의 노란 선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영국의 로키어(N. Lockyer)가 독립적으로 같은 선을 확인하고, 나트륨의 D₁·D₂선과 구별해 D₃선(약 587.6 nm)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로키어는 화학자 프랭클랜드(E. Frankland)와 함께 이것이 지구에 없는 새 원소라고 보고, 그리스어 태양 helios를 따 헬륨(helium)이라 불렀습니다. 지구에서 헬륨이 실제로 분리된 것은 27년 뒤인 1895년(램지)이었습니다 — 인류가 태양에서 먼저 발견한 원소입니다.
리드베리 공식 — 이론이 아니라 ‘맞춰 낸 식’
1860–1885년 사이에 분광학 측정이 쌓이면서, 수소 선들의 파장이 우연한 값이 아니라 단순한 정수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발머(J. Balmer, 1885)는 가시광 영역의 네 선을 하나의 식으로 맞췄고,
리드베리(J. Rydberg)가 이를 파수($1/\lambda$)로 바꾸고 다른 계열까지 포괄하도록 일반화했습니다.
- $n_f$ — 아래쪽(나중) 준위의 정수. 이 값이 계열을 결정한다.
- $n_i$ — 위쪽(처음) 준위의 정수. 반드시 $n_i>n_f$.
- $R_H$ — 수소의 리드베리 상수, $R_H=1.096\,776\times10^{7}\ \mathrm{m^{-1}}$
발머의 식은 이 일반식에서 $n_f=2$인 경우일 뿐입니다. 실제로 넣어 보면
여기서 $4/R_H = 364.7\ \mathrm{nm}$(진공)이고 공기 중 파장으로 고치면 364.6 nm — 발머가 실험값에서 뽑아낸 364.56 nm와 사실상 같은 수입니다. 발머의 식은 리드베리 식의 $n_f=2$ 특수한 경우임이 이렇게 확인됩니다.
이 절은 보어 모형(1913)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리드베리 공식은 원리에서 유도된 것이 아니라 측정된 파장에 정수를 끼워 맞춰 얻은 경험식(empirical formula)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왜 정수가 나오는가”, “$R_H$는 왜 하필 저 값인가”를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답 — $n$이 에너지 준위 번호이고 $R_H$가 $k_e,e,m_e,h,c$의 조합이라는 것 — 은 42.3절 보어 모형에서 나옵니다.
수소의 네 계열
$n_f$를 1, 2, 3, 4로 고정할 때마다 하나의 계열(series)이 생깁니다. 각 계열에서 가장 긴 파장은 $n_i=n_f+1$일 때이고, 계열 한계(series limit)는 $n_i\to\infty$인 극한 — 즉 $1/\lambda = R_H/n_f^{2}$ — 로, 그 계열에서 가장 짧은 파장입니다.
| 계열 | $n_f$ | $n_i$ | 영역 | 첫 선(가장 긴 파장) | 계열 한계 ($n_i\to\infty$) |
|---|---|---|---|---|---|
| 라이먼 (Lyman) | 1 | 2, 3, 4, … | 자외선 | 121.6 nm | 91.2 nm |
| 발머 (Balmer) | 2 | 3, 4, 5, … | 가시광선 | 656.3 nm | 364.6 nm |
| 파셴 (Paschen) | 3 | 4, 5, 6, … | 적외선 | 1875 nm | 820.4 nm |
| 브래킷 (Brackett) | 4 | 5, 6, 7, … | 적외선 | 4051 nm | 1458 nm |
(라이먼 계열은 진공 파장, 나머지 세 계열은 공기 중 파장 기준입니다 — 분광학의 관례이며 이유는 아래 심화 박스에서. 발머 계열의 개별 선 $\mathrm{H}_\alpha\,656.3$·$\mathrm{H}_\beta\,486.1$·$\mathrm{H}_\gamma\,434.1$ nm는 이 장 들어가며의 표를 참조하세요. 여기서는 계열 전체의 구조를 봅니다.)
$n_i\to\infty$는 전자가 원자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경계입니다. 단, 그 에너지는 그 계열의 아래쪽 준위 $n_f$에서 잰 값입니다. $n_f=1$인 라이먼 계열의 한계 91.2 nm만이 바닥 상태에서 잰 값 — 즉 수소의 이온화 에너지 13.6 eV에 정확히 대응합니다(발머 한계 364.6 nm는 3.40 eV, 즉 $n=2$에서의 이온화 에너지) ($E=hc/\lambda = 1240\ \mathrm{eV\!\cdot\!nm}/91.2\ \mathrm{nm}\approx13.6\ \mathrm{eV}$). 한계보다 짧은 파장에서는 선이 아니라 연속 스펙트럼이 시작됩니다 — 떨어져 나간 전자의 운동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준위 값 $E_n=-13.6\ \mathrm{eV}/n^{2}$ 자체는 42.3절의 결과를 미리 빌려온 것입니다. 42.1절 시점에서 실험이 아는 것은 파장의 규칙성뿐입니다.)
$n_f=2,\ n_i=3$을 리드베리 공식에 넣으면 $$\frac1\lambda = (1.096\,776\times10^{7}\ \mathrm{m^{-1}})\left(\frac14-\frac19\right) = (1.096\,776\times10^{7})\times\frac{5}{36}=1.523\,3\times10^{6}\ \mathrm{m^{-1}}$$ $$\lambda = 656.5\ \mathrm{nm}\ (\text{진공})\ \longrightarrow\ 656.3\ \mathrm{nm}\ (\text{공기})$$ 측정값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계열 한계는 $\lambda = 4/R_H = 364.7$ nm(진공) $\to$ 364.6 nm(공기)입니다.
심화 — $R_H$와 $R_\infty$, 그리고 ‘공기 중 파장’이라는 함정 교재의 $1.0973732\times10^7$은 사실 $R_\infty$ · 표의 파장은 대부분 공기 기준
(1) 두 개의 리드베리 상수. 들어가며에서 본 정밀값 $R_\infty = 10\,973\,731.568\,157(12)\ \mathrm{m^{-1}}$은 핵이 무한히 무겁다고 가정한 극한값입니다. 실제 수소에서는 양성자도 함께 움직이므로 전자 질량 $m_e$ 대신 환산질량 $\mu = m_e m_p/(m_e+m_p)$를 써야 하고, $$R_H = \frac{R_\infty}{1+m_e/m_p} = \frac{1.097\,373\times10^{7}}{1+1/1836.15} = 1.096\,776\times10^{7}\ \mathrm{m^{-1}}$$ 이 됩니다. 두 값은 약 0.054% 차이입니다. 일반물리 교재가 “$R_H = 1.0973732\times10^{7}\ \mathrm{m^{-1}}$”라고 적는 경우가 흔한데, 그 수는 엄밀히는 $R_\infty$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수소의 실제 선 파장을 재현하기 위해 $R_H = 1.096\,776\times10^{7}\ \mathrm{m^{-1}}$을 씁니다. 환산질량 보정의 유도는 42.3절에서 다루며, 들어가며에서 언급한 He⁺ 리드베리 비 4.0016도 바로 이 보정의 결과입니다.
(2) 진공 파장 vs 공기 파장. 리드베리 공식이 주는 것은 진공에서의 파장입니다. 그러나 분광학의 관례상 가시광·적외선 선은 표준 공기 중 파장으로 표기합니다($n_{\text{air}}\approx1.000\,28$, 즉 약 0.028% 짧아짐). 그래서 $\mathrm{H}_\alpha$는 진공 656.47 nm, 공기 656.29 nm이고 교재는 656.3 nm로 적습니다. 반대로 라이먼 계열은 공기가 흡수해 버리는 진공자외선(VUV)이라 애초에 진공에서만 측정되므로, 121.6·91.2 nm는 진공 파장입니다. 위 표의 값들도 이 관례를 따랐습니다 — 라이먼은 진공, 나머지는 공기 기준입니다.
(3) 이름의 유래. 라이먼(T. Lyman, 1906–14), 발머(1885), 파셴(F. Paschen, 1908), 브래킷(F. Brackett, 1922)은 각 계열을 처음 관측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발머 계열이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것만이 사람 눈에 보이는 영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위로는 푼트(Pfund, $n_f=5$), 험프리스(Humphreys, $n_f=6$) 계열이 이어집니다.
이제 문제는 분명해졌습니다. 원자는 왜 정해진 파장의 빛만 주고받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 그것이 42.2절입니다.
42.2 원자의 처음 모형
42.1절의 선 스펙트럼을 설명하려면 원자의 내부 구조부터 정해야 합니다. 1900년 전후 15년 동안 원자의 모습은 단단한 구 → 푸딩 → 핵으로 두 번 바뀌었고, 마지막 모형조차 고전물리 안에서는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① 뉴턴의 원자 — 단단하고 쪼갤 수 없는 구
뉴턴 이래 원자는 작고 단단하며 더 쪼갤 수 없는 구로 여겨졌습니다. 이 그림은 기체 운동론(충돌하는 알갱이)에는 잘 맞았지만, 내부가 없으므로 원자가 왜 빛을 내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② 톰슨(1897–1904) — 전자의 발견과 ‘건포도 푸딩’
톰슨이 1897년 음극선관에서 잰 것은 전하 $e$나 질량 $m_e$가 따로가 아니라 그 비(比)인 비전하 $e/m_e$였습니다.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음극선을 휘게 해 두 힘이 상쇄되는 조건에서 속도를, 이어서 편향량에서 $e/m_e$를 얻습니다. ($e$ 자체는 1909년에 시작된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정밀값 1913년)이 필요했습니다.)
같은 전하량이라면 비전하가 크다 = 질량이 작다는 뜻입니다. 음극선 입자는 가장 가벼운 이온인 수소 이온보다 약 1800배 가벼웠습니다. (위는 오늘날의 값입니다. 톰슨 자신이 1897년에 얻은 값은 ‘약 1000배’ 수준이었지만, 결론을 바꾸기에는 이미 충분한 차이였습니다.)
| 관측 | 톰슨이 끌어낸 결론 |
|---|---|
| $e/m_e$가 수소 이온보다 1800배 크다 | 원자보다 훨씬 가벼운 입자가 존재한다 → 원자는 쪼갤 수 있다 |
| 음극 재질(알루미늄·백금·철)을 바꿔도 값이 같다 봉입 기체 종류를 바꿔도 값이 같다 |
이 입자는 특정 물질의 부산물이 아니라 모든 물질의 공통 성분이다 → 전자 |
| 원자는 전체적으로 중성 | 음전하를 상쇄할 양전하가 원자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 |
양전하가 원자 부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고, 그 속에 전자가 박혀 있다. 수박의 붉은 살(양전하)에 씨(전자)가 박힌 모습, 또는 푸딩 반죽에 건포도가 박힌 모습입니다. 비유의 한계: 푸딩과 달리 원자의 ‘반죽’은 물질이 아니라 전하 분포이고, 박힌 전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평형점 주위에서 진동합니다.
심화 — 왜 하필 ‘푸딩’이었나: 톰슨을 몰아붙인 세 가지 제약 언쇼 정리 · 균일 대전 구 내부의 선형 복원력 · $\omega\approx1.6\times10^{16}$ rad/s
푸딩 모형은 “아무렇게나 상상한 그림”이 아닙니다. 톰슨에게 남은 선택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 제약 | 내용 | 그래서 배제되는 것 |
|---|---|---|
| (1) 중성 | 전자의 음전하를 정확히 상쇄하는 양전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전자만 있는 원자’ |
| (2) 질량 배분 | 전자는 수소 이온의 $1/1836$밖에 안 된다 → 원자 질량의 거의 전부는 양전하 쪽 | ‘가벼운 양전하’ |
| (3) 안정성 — 결정적 |
언쇼 정리(Earnshaw, 1842) — 정전기력만으로는 안정한 정적 배치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궤도운동을 시키면 가속 전하가 복사해 무너진다. (바로 아래에서 자세히) | 점 양전하 + 정지 전자도, 점 양전하 + 궤도 전자도 모두 불가 |
언쇼 정리 — 정전기력으로는 ‘그릇’을 만들 수 없다
점전하들이 오직 정전기력만으로 정지한 채 안정한 평형을 이루는 배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제 세 가지: 정지 · 정전기력만 · 점전하. 3차원 공간에서의 이야기이고, 아래 증명은 “나머지 전하가 만든 장 속의 전자 하나”에 대한 것입니다.)
흔한 오해 주의 — 평형점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짜힘이 0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그 점은 언제나 안장점(saddle point)이어서, 아주 조금만 밀어도 어느 한 방향으로는 반드시 굴러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한 줄로 끝납니다. 전하가 없는 공간에서 퍼텐셜은 라플라스 방정식 $\nabla^{2}V=0$을 따르고, 전자($-e$)의 퍼텐셜 에너지 $U=-eV$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점이 모든 방향으로 위로 볼록한 확실한 극소이려면 세 항이 모두 양수여야 합니다(그래야 어느 쪽으로 밀려도 되돌아오니까). 그런데 셋의 합이 0이므로 셋이 모두 양수일 수는 없습니다 — 한 방향이 계곡이면 다른 방향은 반드시 언덕, 곧 안장점입니다.
톰슨의 탈출구 — 전제를 깨기
위 세 전제 중 점전하는 곧 “전자가 놓인 자리에는 다른 전하가 없다”, 즉 전하가 없는 영역($\nabla^{2}V=0$)이라는 뜻입니다. 톰슨이 깬 것이 바로 이 전제입니다. 전자가 양전하 분포 안쪽에 있으면 그곳의 전하 밀도 때문에 $\nabla^{2}V=-\rho/\varepsilon_0$이고,
이제 세 항의 합이 양수이므로 셋 다 양수인 진짜 극소점이 허용됩니다. 실제로 균일 대전 구 안에서는 아래에서 유도할 $F=-kr$ 덕분에 $U=\tfrac12 kr^{2}$인 완벽한 포물선 그릇이 생깁니다.
| 톰슨 앞에 놓인 선택지 | 결과 |
|---|---|
| 양전하를 점으로 두고 전자를 정지시킨다 | 언쇼 정리로 금지 — 평형점은 안장점뿐, 반드시 한 방향으로 새어 나간다 |
| 태양계처럼 궤도 운동을 시킨다 | 가속 전하가 빛을 복사 → 점 핵 주위라면 $\sim10^{-11}$초 만에 나선 붕괴 (러더퍼드가 나중에 걸린 함정 — 이 절 ④ 러더퍼드 모형의 치명적 결함 참조) |
| 양전하를 부피에 퍼뜨린다 | $\nabla^{2}U>0$ → 진짜 극소점 = 안정, 덤으로 선형 복원력과 고유 진동수까지 — 톰슨의 선택 |
푸딩 모형은 ‘유치한 상상’이 아니라, 1904년에 알려진 물리(뉴턴 역학 + 맥스웰 전자기학)만으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길이었습니다. 점 양전하 + 정지 전자는 언쇼 정리가 원천 봉쇄했고, 남은 길은 ‘양전하를 부피에 퍼뜨려 진짜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임 — 톰슨의 1904년 논문에서 전자는 그 그릇 안에서 고리를 이루어 회전합니다. 그는 복사 문제를 알고 있었고, 한 고리에 전자가 많으면 복사가 크게 상쇄된다고 논증해 비켜 갔습니다. 궤도 복사 붕괴가 결정타가 되는 것은 러더퍼드의 점 핵이 등장한 뒤입니다. 또 같은 무렵 나가오카의 토성 모형(1904) 등 경쟁 모형도 있었지만, 톰슨이 지적한 고리의 면외 진동 불안정성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더 깊이 — 라플라스 방정식 $\nabla^{2}V=0$은 무슨 뜻인가 평균값 성질 · 전기력선은 빈 공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 중력·영구자석에도 성립
(가) 같은 식의 네 가지 얼굴. $\nabla^{2}V=0$은 계산 규칙이 아니라 “퍼텐셜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에 대한 네 가지 같은 진술입니다.
| 읽는 방법 | 무슨 뜻인가 | 언쇼와의 연결 |
|---|---|---|
| ① 평균값 성질 $V(\mathbf r_0)=\dfrac{1}{4\pi R^{2}}\displaystyle\oint_{|\mathbf r-\mathbf r_0|=R}V\,dA$ |
어떤 점의 값이 그 점을 중심으로 한 구면 위 값들의 평균과 정확히 같다(반지름 $R$이 무엇이든). | 주변 모두보다 낮은 점이 있을 수 없다 — 구덩이도 봉우리도 없다 |
| ② 발산이 0 $\nabla^{2}V=-\nabla\cdot\mathbf E$ → $\nabla\cdot\mathbf E=0$ |
들어온 만큼 나간다. 전기력선은 빈 공간에서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 전자를 한 점에 가두려면 그 점 주위 모든 방향에서 전자가 받는 힘 $\mathbf F=-e\mathbf E$가 안쪽을 향해야 합니다. 즉 $\nabla\!\cdot\!\mathbf F<0$, 다시 말해 $\nabla\!\cdot\!\mathbf E>0$ — 가우스 법칙상 그 자리에 양전하가 있어야만 가능. 곧 “가두고 싶은 자리에는 전하를 놓아야 한다” — 톰슨이 한 일이 문자 그대로 이것 |
| ③ 곡률의 합이 0 | 한 방향으로 볼록한 대가를 다른 방향에서 반드시 치른다. | 평형점은 언제나 안장 |
| ④ 가장 팽팽한 막 $\displaystyle\int|\nabla V|^{2}dV$ 최소 |
주어진 경계값 아래 이 적분을 최소로 만드는 함수. 철사 고리에 걸린 비눗막이 바로 이 방정식을 따른다. | 막의 최고점·최저점은 언제나 테두리(경계). 열원 없는 방의 정상상태 온도도 같은 방정식 — 가장 뜨거운 곳은 늘 벽 |
(나) 축퇴 경우와 최대 원리. 엄밀히는 2계 도함수 세 항이 모두 0인 축퇴 경우가 남습니다. 이때는 더 높은 차수가 결정하므로 “합이 0” 논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빈틈까지 막아 주는 것이 최대 원리입니다 — 상수가 아닌 조화함수는 영역 내부에서 극값을 가질 수 없고, 최대·최소는 언제나 경계에 놓입니다. “합이 0”은 극값을 대개 막는 데 그치지만 최대 원리는 예외 없이 막으므로, 이것이 더 강한 진술입니다(위 ① 평균값 성질에서 곧바로 따라 나옵니다).
(다) 힘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증명이 실제로 쓰는 것은 “$1/r^{2}$ 힘”이라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언쇼는 전기에만 갇히지 않습니다.
- 중력에도 성립 — 정지한 질량들만으로 안정한 배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라그랑주 점 $L_4$·$L_5$가 안정한 것은 회전계에서 작용하는 코리올리 힘 덕분이지 정적 평형이 아닙니다.
- 영구자석에도 성립 — 자석 위에 자석을 가만히 정지 부양시키려는 시도가 전부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라) 그렇다면 무엇이 언쇼를 깨는가. 전제 셋(정지 · 정전기력만 · 점전하) 가운데 하나를 깨는 수밖에 없습니다.
| 방법 | 어떤 전제를 깨나 | 어떻게 | 실례 |
|---|---|---|---|
| 폴 트랩 | 정지된 장 | 안장의 부호를 RF로 빠르게 뒤집어(‘회전하는 안장’) 시간 평균 퍼텐셜에 극소를 만듦 | 이온 트랩 |
| 반자성 | 정전기력만 | 장이 유도한 자화라 에너지가 $\propto|B|^{2}$이고, $|B|^{2}$는 조화함수가 아니어서 자유공간에서도 극소가 허용됨 | 열분해 흑연, 개구리 부양 |
| 초전도체 | 정전기력만 | 자속 고정(flux pinning) — 자속이 박혀 변위를 되돌리므로 사실상 되먹임 | 자기부상 |
| 레비트론 팽이 | 정지 | 자이로 세차운동으로 회전축이 장 방향을 따라가며 뒤집힘을 막음(회전이 느려지면 곧 떨어짐) | 부양 팽이 |
| 양자역학 | 점전하 · 정지 | 전자는 한 점에 있지 않고 퍼져 있으며, 좁게 가둘수록 운동에너지가 대가로 치솟아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 생김 | 실제 원자 |
언쇼가 이 정리를 낸 논문의 제목은 ‘빛매질 에테르의 구성을 지배하는 분자력의 성질에 대하여’(1839년 케임브리지 철학회 발표, 1842년 출판)였습니다. 당시 관심사는 원자가 아니라 에테르였습니다 — 빛의 매질인 에테르 입자들이 $1/r^{2}$ 힘으로 안정한 격자를 이룰 수 있는지를 따지다가 “그럴 수 없다”를 증명한 것입니다. 에테르는 사라졌지만 정리는 살아남아, 60년 뒤 원자 모형의 결정적 제약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언쇼를 실제로 깨는 길은 몇 되지 않고(바로 위 접기 참조), 자연이 고른 것은 양자역학이었습니다. 가둠의 대가로 운동에너지가 치솟아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바닥 상태가 생기는 것 — 41.8절 단조화 진동자의 영점 에너지가 같은 원리를 가장 깨끗한 형태로 보여 주며, 수소 원자에서는 그것이 $-13.6$ eV의 바닥 상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원자가 무너지지 않는 진짜 이유입니다. 톰슨도 러더퍼드도 이 카드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습니다 — 그 카드가 등장하는 과정이 42.3∼42.4절입니다.
균일 대전 구 내부의 전기장
반지름 $R$인 구에 총전하 $Q=+Ze$가 균일하게 퍼져 있을 때, 반지름 $r\,(r<R)$인 가우스 구면이 감싸는 전하는 부피비만큼인 $Q_{\text{enc}}=Q\,r^{3}/R^{3}$입니다. 가우스 법칙 $E\cdot4\pi r^{2}=Q_{\text{enc}}/\varepsilon_0$에서
바깥($r>R$)의 $1/r^{2}$과 달리 안쪽에서는 전기장이 $r$에 정비례합니다. 전하 $-e$인 전자가 받는 힘은 중심을 향하며
용수철과 똑같은 선형 복원력입니다. 따라서 (i) 중심에 안정한 평형점이 생기고, (ii) 덤으로 전자는 단조화 진동(41.8절 단조화 진동자)을 하며, (iii) 진동수가 하나로 정해집니다. 고전 전자기학에서 진동하는 전하는 자기 진동수의 빛을 내므로, 모형이 스펙트럼에 대해 무언가를 예측하게 된 것입니다. (복사로 진동이 잦아들어도 전자는 중심에 정지할 뿐이므로, 러더퍼드 모형과 달리 원자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 톰슨 모형의 최대 강점이었습니다.)
수소($Z=1$)에 원자 반지름 $R\approx0.1$ nm를 넣으면
100 nm대의 자외선 — 원자가 실제로 내는 빛의 자릿수와 얼추 맞습니다 (라이먼 계열 121.6 nm와 같은 규모). 톰슨 모형이 당대에 매력적이었던 진짜 이유가 이것입니다. $R$을 0.05 nm로 잡으면 42 nm, 0.15 nm로 잡으면 217 nm이니, 원자 크기만 알면 자외선이 나온다는 결론은 꽤 튼튼했습니다.
이 모형이 주는 것은 고유 진동수 근처의 빛 하나뿐입니다. 42.1절에서 본 발머 계열 같은 — 정수 $n$에 따라 촘촘해지다 계열 한계로 수렴하는 — 불연속 선들의 집합은 나오지 않습니다. 톰슨 자신도 1904년에 전자를 여러 개의 동심 고리로 배열해 정상 진동 모드를 여럿 만들어 보았지만, 그렇게 얻은 진동수들은 리드베리 공식의 $1/n^{2}$ 규칙과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 정수 $n$이 들어설 자리가 이 모형 안에는 없습니다.
③ 러더퍼드(1909–1911) — 알파입자 산란 실험
가이거(H. Geiger)와 마스든(E. Marsden)은 방사성 선원에서 나온 알파입자($\mathrm{He}^{2+}$, 전하 $+2e$)를 얇은 금박(두께 $\sim0.4\ \mu\mathrm{m}$)에 쏘고, 형광 스크린에 찍히는 섬광의 각도 분포를 셌습니다.
| 관측된 사실 | 곧바로 따라 나오는 결론 | 왜 그런가 |
|---|---|---|
| 대부분의 α가 거의 휘지 않고 그대로 통과 | 원자는 거의 텅 비어 있다 | 진로에 걸리는 것이 거의 없다 — 물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딱딱한 알맹이’가 아니다 |
| 극소수(약 2만 분의 1)가 90°를 넘어 되튐 | 전하가 아주 좁은 영역에 뭉쳐 있다 | 큰 각도로 밀어내려면 엄청나게 센 전기력이 필요하고, $F\propto1/r^{2}$이므로 $r$이 아주 작아야 한다. 전하가 퍼져 있으면 가까이 가도 힘이 세지지 않는다 |
| 되튀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 그 뭉치는 α보다 훨씬 무겁다 | 당구 비유: 볼링공은 탁구공을 맞고 되돌아오지 않는다. 가벼운 표적은 튕겨 나가며 운동량을 가져갈 뿐, 무거운 발사체를 되돌려보낼 수 없다 |
톰슨 모형으로는 왜 안 되는가 — 숫자로
양전하가 원자 전체($R\approx10^{-10}$ m)에 퍼져 있다면, α가 원자를 지나며 받는 힘은 표면 근처에서 최대이고 그때조차 매우 약합니다. 7.7 MeV의 α가 원자 하나에서 받는 최대 편향은
| 단계 | 값 |
|---|---|
| 금박 두께 / 원자 간격 | $0.4\ \mu\mathrm{m}/0.26\ \mathrm{nm}\approx1500$개의 원자를 지난다 |
| 무작위 걸음으로 누적된 편향 | $\sqrt{1500}\times3\times10^{-4}\approx0.012\ \mathrm{rad}\approx0.66^{\circ}$ |
| 90°($1.57$ rad)에 도달하려면 | 표준편차의 약 135배 → 확률 $e^{-135^{2}/2}\sim10^{-3900}$ |
| 실제 관측 | $1/20000=5\times10^{-5}$ — 예측과 수천 자릿수가 어긋난다 |
“그것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휴지 한 장에 15인치 포탄을 쐈는데 그것이 되돌아와 나를 맞힌 것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되튐은 ‘조금 더 센 산란’이 아니라 모형 자체가 틀렸다는 신호였습니다. 러더퍼드는 여러 번의 작은 산란이 겹친 결과가 아니라 단 한 번의 강한 충돌(single scattering)로 설명해야 한다고 보았고, 그러려면 전하가 원자 중심의 극히 좁은 영역에 모여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원자핵(nucleus)입니다.
α가 핵에 정면으로 다가가면 어느 지점에서 완전히 멈췄다가 되돌아옵니다. 그 지점 $d$에서는 처음의 운동에너지 $E$가 전부 전기 퍼텐셜 에너지로 바뀌어 있습니다($E=k_e q_1q_2/d$). α의 전하는 $+2e$, 핵의 전하는 $+Ze$이므로
$E=7.7$ MeV$\,=1.23\times10^{-12}$ J, 금 $Z=79$를 넣으면
이 $d$는 핵 반지름의 상한입니다(α가 핵에 닿지 않고 되돌아왔으므로 핵은 이보다 작다). 실제 금 핵($A=197$)의 반지름은 뒤에 배울 경험식 $R\approx1.2\,A^{1/3}\ \mathrm{fm}$로 $7\times10^{-15}$ m — 위 상한 $d$보다 4배 더 작습니다. 즉 7.7 MeV의 α는 금 핵에 닿지도 못하고 되돌아온 것이고, 따라서 산란은 순수한 쿨롱 힘만으로 설명됩니다(러더퍼드가 자신의 공식을 확신한 근거입니다). 원자 반지름 $10^{-10}$ m와 비교하면 핵은 약 $10^{4}$배 작고, 부피로는 $10^{12}$배 작습니다. 원자를 지름 100 m의 경기장으로 키워도 핵은 지름 1 cm의 구슬 하나입니다 — 나머지는 전부 빈 공간입니다.
④ 러더퍼드 모형의 치명적 결함 — 자기파멸
핵이 있다면 전자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정지해 있으면 쿨롱 인력에 끌려 즉시 핵으로 떨어지므로, 러더퍼드는 행성처럼 핵 주위를 도는 전자를 상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전물리 자신이 무너집니다.
| 고전물리가 예측하는 것 | 실제 관측 |
|---|---|
| 전자는 나선을 그리며 $\sim10^{-11}$초 만에 핵으로 추락 (라모어 공식 $P=\dfrac{e^{2}a^{2}}{6\pi\varepsilon_0c^{3}}$으로 계산하면, 반지름 $5.3\times10^{-11}$ m에서 출발할 때 $1.6\times10^{-11}$ s) |
원자는 수십억 년째 안정하다 |
| 반지름이 줄면 회전 진동수가 연속으로 변한다 → 연속 스펙트럼 | 42.1절의 선 스펙트럼 — 정해진 파장만 나온다 |
러더퍼드의 핵은 실험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가속 전하의 복사 역시 맥스웰 방정식의 직접적인 귀결이었습니다. 둘 다 옳은데 함께 두면 원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더 나은 궤도’가 아니라 고전역학의 규칙 자체를 제한하는 것— 허용되는 궤도가 양자화되어 있고 그 위에서는 복사하지 않는다는 보어의 가정(42.3절)이었습니다.
⑤ 세 모형 한눈에 비교
| 모형 | 양전하는 어디에 | 전자는 | 설명한 것 | 설명하지 못한 것 |
|---|---|---|---|---|
| 단단한 구 뉴턴~19세기 |
구분 없음 — 내부 구조 자체가 없음 | 존재하지 않음 | 기체 운동론, 일정 성분비의 법칙 | 전기 현상, 스펙트럼, 원자의 분해 |
| 톰슨 (1904) 건포도 푸딩 |
원자 전체 부피에 균일하게 퍼짐 (질량도 여기) | 그 속에 박혀 평형점 주위를 진동 | 원자의 중성, 전자의 보편성, 자외선대의 고유 진동수(안정한 평형) | 선 스펙트럼(진동수가 하나뿐), 큰 각도 산란 |
| 러더퍼드 (1911) 핵 모형 |
중심의 핵($\sim10^{-14}$ m)에 집중 (질량도 여기) | 바깥 빈 공간에서 핵 주위를 공전 | 산란 실험 전체(각도 분포까지 정량적으로), 원자가 비어 있음 | 원자의 안정성($10^{-11}$초 붕괴), 선 스펙트럼 |
원자의 ‘모양’은 러더퍼드가 옳게 잡았습니다. 남은 것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와 왜 정해진 파장만 내놓는가이고, 두 질문은 사실 하나의 답을 갖습니다 — 42.3절 보어 모형입니다.
42.3 수소 원자의 보어 모형
42.2절에서 러더퍼드의 핵은 실험으로 확정되었지만, 그 행성 모형은 $\sim10^{-11}$초 만에 붕괴해야 했고 연속 스펙트럼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실제 원자는 안정하고 스펙트럼은 42.1절의 선입니다. 1913년 닐스 보어(Niels Bohr)가 이 두 모순을 한꺼번에 겨냥한 모형을 제안합니다.
보어는 새 입자를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나와 있던 세 조각을 수소 원자 속 전자에 맞춰 엮었습니다. 플랑크의 양자화된 에너지 + 아인슈타인의 광자 + 러더퍼드의 행성(핵) 모형. 그 결과 가시광의 발머 네 선을 포함한 수소 선 스펙트럼을 처음으로 원리적으로 설명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파장을 맞추는 경험식에서 “왜 정수가 나오는가”로 넘어가는 첫 단계 — 42.1절이 “왜는 42.3에서”라고 예고한 약속의 시작입니다).
| 가져온 조각 | 출처 | 보어가 수소에 쓴 방식 |
|---|---|---|
| 에너지 양자화 | 플랑크 (흑체, 1900) 40.1절 |
전자가 허용된 특정 궤도에만 머물 때 에너지가 이산적 |
| 광자 $E=hf$ | 아인슈타인 (광전효과, 1905) 40.2절 |
궤도 사이 전이에서 에너지 차이만큼의 광자를 방출·흡수 |
| 핵 + 공전 전자 | 러더퍼드 (산란, 1911) 42.2절 |
양성자 둘레의 원궤도 — 단, 허용 궤도만 안정 |
보어 모형은 지금 구식입니다. 전자를 정해진 원궤도의 입자로 보는 그림은 파동함수·확률밀도의 양자역학으로 완전히 대체되었습니다(42.4절 이후).
그런데도 배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원자 크기 계에서 에너지가 양자화되고 각운동량에도 양자 조건이 걸린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작동시킨 모형이고, 수소의 관측값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예측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준위 공식만은 나중에 양자역학이 다시 유도해 같은 값을 줍니다 — 그 공식 자체는 이 절에서 네 가정을 쌓은 뒤, 힘 균형과 각운동량 조건을 연립해 이끌어 냅니다(이어서 작성).
보어의 네 가정
보어 모형은 유도의 끝이 아니라 가정(postulate)의 목록에서 시작합니다. 네 조항을 한눈에 두고, 각 조항을 하나씩 풀어 갑니다.
| 가정 | 한 줄 | 고전물리와의 관계 |
|---|---|---|
| ① | 전자는 쿨롱 인력 아래 양성자 둘레를 원궤도로 돈다 | 러더퍼드 행성 모형을 그대로 받음 |
| ② | 특정 궤도(정상 상태)만 허용되며, 그 위에서는 복사하지 않는다 | 맥스웰 전기역학과 정면 충돌 — 유도가 아니라 공리 |
| ③ | 궤도 사이 전이에서만 광자를 방출·흡수: $E_i-E_f=hf$ | 전이는 고전이 다룰 수 없음 — 아인슈타인 광자를 이식 |
| ④ | 허용 궤도의 각운동량 $L=m_e vr=n\hbar$ ($n=1,2,3,\ldots$) | 궤도 크기를 고르는 양자 조건 (나중에 수정됨 — 아래 ④) |
① 원궤도 — 러더퍼드를 유지한다
첫 가정은 새것이 아닙니다. 전자(전하 $-e$, 질량 $m_e$)가 양성자($+e$) 주위를 반지름 $r$의 원으로 돌며, 구심력은 쿨롱 인력입니다. (지금은 핵을 고정한 근사 — 환산질량 보정은 이 절 뒤에서.)
궤도 운동 자체는 고전역학으로 기술합니다. 보어가 바꾼 것은 “어떤 원이 허용되는가”이지, 허용된 원 위에서의 힘 균형 방정식이 아닙니다.
② 정상 상태 — 복사를 금지하는 공리
두 번째 가정이 모형 전체의 심장입니다. 전자는 아무 원이나 도는 것이 아니라, 이산적인 허용 궤도(정상 상태, stationary state)에만 머뭅니다. 그 상태에 있는 동안 원자의 총에너지는 일정하고 — 구심가속을 받고 있어도 — 전자기파를 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러더퍼드가 예언한 나선 붕괴도 없습니다.
42.2절의 논증을 떠올리세요. 원운동은 가속이고, 가속 전하는 맥스웰 방정식에 따라 반드시 복사합니다. 그런데 보어는 “허용 궤도에서는 복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전 전기역학과의 논리적 모순을 해소한 유도가 아닙니다. 보어는 그 모순을 풀 미시 메커니즘을 제시하지 않았고, 복사가 금지된 궤도를 공리(postulate)로 선언했습니다. “왜 그 궤도에서는 맥스웰이 멈추는가?”에 대한 답은 13년 뒤의 파동역학이 맡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분명히 할 것은 — 가정 ②은 고전물리의 귀결이 아니라, 고전물리를 제한하기 위해 집어넣은 규칙이라는 점입니다.
| 러더퍼드 (고전) | 보어 가정 ② | |
|---|---|---|
| 허용 궤도 | 연속 — 반지름이 아무 값이나 가능 | 이산 — 특정 궤도만 ‘정상 상태’ |
| 궤도 위 복사 | 가속 ⇒ 연속 복사 ⇒ 에너지 손실 | 정상 상태에서는 복사 금지 (공리) |
| 원자의 운명 | $\sim10^{-11}$ s 만에 핵으로 추락 | 정상 상태에 머무는 한 안정 |
| 스펙트럼 | 연속 스펙트럼이어야 함 | 전이(가정 ③)에서만 선이 생김 |
③ 전이와 광자 — 선 스펙트럼의 자리
전자가 한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옮길 때에만 복사가 관여합니다. 높은 에너지 궤도($E_i$)에서 낮은 궤도($E_f$)로 떨어지면 광자를 방출하고, 반대 방향이면 광자를 흡수합니다. 이 과정 자체는 고전역학으로 기술할 수 없습니다.
핵심은 정확 일치입니다. 궤도 전자의 상태를 바꿀 수 있는 광자는 두 준위 차이에 정확히 해당하는 에너지 $hf$를 가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방출·흡수 스펙트럼에 정해진 파장만 찍힙니다 — 42.1절의 선이 바로 이 차이의 목록입니다. (어느 정수 $n$이 어느 $E$에 대응하는지, 발머 식이 왜 $n_f=2$인지는 가정 ④로 궤도 크기를 고른 뒤 에너지를 계산해야 비로소 나옵니다.)
④ 각운동량 양자화 — 허용 궤도를 고르는 조건
가정 ②은 “특정 궤도만 허용된다”고만 말하고, 어느 궤도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보어는 궤도 각운동량이 $\hbar=h/2\pi$의 정수배일 때만 허용된다고 못 박았습니다.
- $m_e$ — 전자 질량
- $v$ — 궤도 접선 속력
- $r$ — 궤도 반지름
- $n$ — 주양자수(principal quantum number), 양의 정수
- $\hbar\equiv h/2\pi$ — 환산 플랑크 상수
$n=1$이 가장 안쪽(가장 속박이 큰) 궤도이고, $n$이 커질수록 바깥 궤도입니다. 가정 ①의 힘 균형과 이 조건을 연립하면 허용 반지름·에너지가 이산 값으로 고정됩니다 — 그 계산이 다음 단계입니다.
들어가며에서 미리 적어 두었듯, 보어의 각운동량 조건은 최종 이론이 아닙니다. 양자역학(42.6절)에서는 궤도 각운동량이 양자수 $\ell=0,1,\ldots,n-1$로 정해지고, 바닥 상태($n=1$)에서는 $\ell=0$이라 $L=0$입니다 — 보어가 준 $L=\hbar$와 다릅니다. 지금은 “허용 궤도를 고르기 위해 보어가 이런 조건을 가정했다”는 점만 붙잡고, 그 조건이 어디까지 맞는지의 판결은 42.6절로 미룹니다.
심화 — 네 가정의 논리 구조: 무엇이 ‘빌려 온 것’이고 무엇이 ‘선언’인가 고전 역학 ① · 공리 ②·④ · 광자 ③
| 가정 | 성격 | 한 줄 평가 |
|---|---|---|
| ① 원궤도 + 쿨롱 | 고전 역학을 유지 | 러더퍼드 그림을 그대로 씀. 새 물리 없음. |
| ② 정상 상태 · 무복사 | 순수 공리 | 맥스웰과 충돌. “왜”는 없음. 안정성을 선언으로 확보. |
| ③ $E_i-E_f=hf$ | 아인슈타인 광자를 이식 | 선 스펙트럼의 자리. 전이 과정의 동역학은 비고전. |
| ④ $L=n\hbar$ | 양자 조건(공리) | 허용 $r$을 고름. 에너지 공식의 열쇠 — 그러나 $L$ 값 자체는 후일 수정. |
정리하면, 보어 모형은 “고전 + 두세 줄의 양자 공리”입니다. 그 공리가 실험(발머 선)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1913년에 힘을 얻었고, 공리의 깊은 이유(파동·경계조건)는 1926년 이후에야 채워집니다.
네 가정이 놓였습니다. 이제 가정 ①의 힘 균형과 가정 ④의 각운동량 조건을 연립해 허용 궤도 반지름과 원자 전체 에너지를 이끌어 냅니다. 보어 반지름 $a_0$와 $E_n=-13.6\,\mathrm{eV}/n^{2}$가 이 계산에서 나옵니다. (가정 ③로 42.1절의 리드베리·발머 식에 연결하는 단계는 이어서.)
퍼텐셜에너지와 원자 전체 에너지
가정 ①의 원궤도 위에서 전자–양성자 사이 힘은 쿨롱 인력입니다. 퍼텐셜에너지의 영점은 무한 분리($r\to\infty$)로 잡습니다. 그러면 거리 $r$에서의 퍼텐셜에너지는 음수입니다.
- $k_e$ — 쿨롱 상수(Coulomb’s constant), $k_e=1/(4\pi\varepsilon_0)\approx 8.99\times10^{9}\,\mathrm{N\cdot m^{2}/C^{2}}$
- $e$ — 기본 전하의 크기 ($e>0$). 전자 전하 $-e$, 양성자 $+e$
- $r$ — 전자–양성자 거리 (원궤도 반지름)
원자 전체 에너지 $E$는 전자의 운동에너지 $K$와 퍼텐셜에너지 $U$의 합입니다 (핵은 고정 근사 — 환산질량 보정은 이 절의 뒤쪽 자리에서).
뉴턴 제2법칙 → 전자의 운동에너지
원궤도에서 전자에 뉴턴 제2법칙을 적용합니다. 구심력은 쿨롱 인력이고, 가속도의 크기는 $v^{2}/r$이므로
(가정 ①에 이미 적어 둔 힘 균형과 같습니다. $m_e$는 전자 질량.) 양변에 $r/2$를 곱하면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곧장 나옵니다.
이제 $E=K+U$에 대입합니다. $U=-k_e e^{2}/r$이므로
원궤도·쿨롱 계에서는 $K=-E$이고 $U=2E$입니다. 달리 쓰면 $E=U/2=-K$. 속박 상태라 $E<0$이고, $|E|$가 클수록(더 음수일수록) 더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 양 | $r$에 대한 식 | $r\approx0.0529\,\mathrm{nm}$에서 (뒤에 $a_0=r_1$) |
|---|---|---|
| $U$ | $-k_e e^{2}/r$ | $\approx -27.2\,\mathrm{eV}$ |
| $K$ | $+k_e e^{2}/(2r)$ | $\approx +13.6\,\mathrm{eV}$ |
| $E=K+U$ | $-k_e e^{2}/(2r)$ | $\approx -13.6\,\mathrm{eV}$ |
가정 ①·④ 연립 → 허용 반지름 $r_n$
힘 균형에서 속력의 제곱을 풀면
가정 ④는 $L=m_e v r=n\hbar$이므로 $v=n\hbar/(m_e r)$입니다. 제곱해 위 식과 연립하면
$n=1$일 때의 궤도 반지름 — 모형이 허용하는 가장 작은 원 — 을 보어 반지름 $a_0$라 부릅니다.
| $n$ | $r_n$ | 대략값 |
|---|---|---|
| 1 | $a_0$ | $0.0529\,\mathrm{nm}$ |
| 2 | $4a_0$ | $0.212\,\mathrm{nm}$ |
| 3 | $9a_0$ | $0.476\,\mathrm{nm}$ |
| $n$ | $n^{2}a_0$ | 바깥으로 $n^{2}$에 비례 |
$E=-k_e e^{2}/(2r)$에 $r_n=n^{2}a_0$를 넣으면 허용 에너지가 고정됩니다.
$n=1$이면 $r_1=a_0\approx 0.0529\,\mathrm{nm}$이고 $E_1\approx -13.6\,\mathrm{eV}$입니다. 이것이 42.1절 에너지 준위 사다리가 빌려 쓴 값의 보어 모형 쪽 출처입니다.
$n\to\infty$이면 $E_n\to 0$ (이온화 문턱). 라이먼 계열 한계에 대응하는 $13.6\,\mathrm{eV}$는 바로 $|E_1|$입니다.
반지름 $r_n$과 준위 $E_n$까지가 가정 ①+④의 직접 결과입니다. 가정 ③($E_i-E_f=hf$)로 파장을 뽑아 42.1절의 리드베리·발머 경험식에 연결하는 단계는 이어지는 유도에서 다룹니다.
42.4 수소 원자의 양자 모형
- 3차원 슈뢰딩거 방정식
- 세 양자수 n, ℓ, mℓ의 등장
- 에너지 준위
42.5 수소에 대한 파동 함수
- 바닥 상태 파동함수
- 지름 확률밀도
- 2s · 2p 상태
42.6 양자수의 물리적 해석
- 주양자수 n — 에너지
- 궤도 양자수 ℓ — 각운동량 크기
- 자기 양자수 mℓ — 각운동량 방향
- 스핀 양자수 ms ·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42.7 배타 원리와 주기율표
- 파울리 배타 원리
- 전자 껍질과 부껍질
- 훈트 규칙 · 쌓음 원리
- 주기율표의 주기성
42.8 원자 스펙트럼의 내막: 가시광선과 X-선
- 허용 전이와 선택 규칙
- 특성 X-선 (Kα, Kβ)
- 모즐리 도표
- 제동복사(bremsstrahlung)
42.9 자발 전이와 유도 전이
- 자발 방출 · 유도 흡수 · 유도 방출
- 아인슈타인 계수
- 밀도 반전
42.10 레이저
- 레이저광의 조건
- 3준위 · 4준위 계
- 공진 공동
- 레이저의 응용